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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CSE,CCNA/CCNP,자바등 국제자격증 카페 http://cafe.naver.com/qlkdjlka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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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최영도 변호사의 토기 사랑 한평생 <2편>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최영도 변호사는 1973년 군사독재 시절 사법부 파동의 주역으로 해직 판사가 됐습니다. 그 후 민주화를 외치는 많은 젊은이들의 변론을 맡아 법정에서 싸우기도 했구요. 민변의 창립자이자 회장으로, 또 참여연대의 공동대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 오셨습니다.

한편 그는 변호사로서의 유명세 못지않게 ‘토기 수집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할 정도로 열정적인 토기 컬렉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두 번째 시간입니다. 최영도 변호사의 클래식 음악과 토기 사랑 한평생! 11월 7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인권 변호사 시절, 재판 중 피고인이 판사에게 고무신을 던진 적도 있어

▶ 인권변호사로도 유명하신데요. 많은 사건들 중에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시면 말씀 좀 해주시죠.

저는 주로 대학생들을 많이 변론했는데요. 그 때 대학생들의 이슈는 ‘전두환 독재 정권 타도, 민주 헌법 쟁취’였습니다. 그 중에서 ‘고무신 사건’이라고 제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어요.

대학생 하나가 집시법 위반으로 1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아서 다 복역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 사면복권이 돼서 이제는 전과에 관계없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사면복권 됐어도 사실상 취업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학생이 남의 주민등록증을 이용해서 위장취업을 했어요. 그랬다가 잡혀서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용공조작이 돼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가 됐습니다.

제가 구치소로 면회를 갔더니 이 학생이 말을 시작하기 전에 ‘전 아무개, XXX’ 하는 말이 아주 입버릇처럼 붙었어요. 그 말을 한 서너 번 하고 나서 말을 시작하는 겁니다. 중간에도 또 그러고요. 그러면서 내가 위장취업을 한 것은 자구(自救)행위다, 우리 식구들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런거다, 내가 취업 못하는 것이 내 잘못이냐, 국가가 잘못한 것 아니냐, 그런데 나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라고 하면서 말을 하는데, 제가 ‘아, 이친구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상처받은 영혼의 처절한 울부짖음 같다.’ 하는 것을 느꼈어요.

제가 접견을 마치고 오면서 “학생, 법정에서는 ‘전 아무개, XXX’ 이런 용어를 쓰지 말고, 좀 학생답게 품위있는 용어를 써라. 나는 그렇게 부탁한다.”라고 했는데, 재판 기일이 통지가 돼도 이 친구가 구치소에서 안 나가는 겁니다. 재판제도 자체를 부정한다면서 안 나오는 거예요.

몇 번을 그러다가 어느 날 법정에 나왔어요. 거기서도 역시 계속 욕을 하면서 재판장한테 “나를 고문해서 빨갱이로 몰은 수사관과 검사를 이 법정에 세워서 먼저 책임을 추궁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나 이 재판 못 받겠다.”면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겁니다. 판사가 이름이 뭐냐고 해도 대답도 안하고, 주소를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요. 묵비권은 권리니까, 판사가 “그럼 피고인 심문 없이 시작하겠습니다. 검사! 공소인 진술하세요.” 라고 하니까 그 학생이 “나 이런 재판 못 받겠다. 재판 거부하겠다.” 하면서 그냥 나가버렸어요.

그런데 나가기 전에, 그 당시에는 피고인들이 검은 고무신을 신고 있었습니다. 고무신 한 짝을 벗어서 판사 얼굴을 향해 던졌어요. “나 이런 재판 못 받겠다. 이 무슨 개같은 재판제도냐?” 하면서 말이죠. 저도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다행히 얼굴에 맞지 않고 싹 스쳐서 뒤에 벽에 맞았는데, 판사가 잠깐 당황한 듯 하다가 계속해서 피고인 없이 재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그냥 나가면 더 불리할 것 같아서 피고인 없이 그냥 변론 다 했습니다.

그리고 재판 끝난 다음에 한참 후배지만 그 판사를 찾아가서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그랬더니, “선배님이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고 상당히 침착하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중형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검사구형이 4년이었는데 1년 선고를 받았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많이 봐준 겁니까? 그래서 참 제가 깜짝 놀란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 그럴 때는 변론을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저는 그런 식으로 변론을 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민주헌법을 쟁취해서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겠다는 것이 뭐가 나쁘냐? 민주화 하겠다는 것 아니냐? 나는 이런 학생들이 있어서 대한민국이 희망이 있다고 본다. 만약 이런 학생들조차 없어서 침묵을 하고 있다면 대한민국은 볼 장 다 본 나라다.” 그러면서 악을 썼죠.

그 당시 유일하게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공간이 바로 법정이었어요. 거기서 밖에서 하지 못하는 말을 다하고 카타르시스를 해소하고 그랬죠.

▶ 박정희 정권에서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면서도 이러한 사건들이 무수히 많았죠?

법정에서 고무신까지 던진 사건은 없지만, 재판장한테 막 대들고 재판 거부하고 나가는 것은 다반사였어요.

▶ 변호사 생활을 하시면서 불가항력이나 한계를 느끼는 경우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저를 포함해서 그 당시에 20명 가까이 되는 변호사들이 시국 사건을 무료변론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 20명이 한 건도 무죄를 선고받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에 “그런 사법부를 상대로 무죄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다 해서 우리는 참 무능한 변호사들이다. 오히려 우리가 그 사건을 변론하면 더 유죄, 더 무거운 판결이 나오는 것 같으니까 우리 변론을 그만두자.” 라고 그렇게까지 말하면서 우리가 모여서 한 잔 마시면서 울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그래도 우리마저 없으면 어떡하냐? 그 대학생들, 노동자들. 우리가 가서 그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이끌어 내서 법정에서 당당하게 자기 소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자. 우리가 그것을 이끌어주지 않으면 그 친구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없지 않느냐?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변론을 계속하자.” 라고 해서 변론을 계속 했습니다.

▶ ‘인권 변호사’ 제도가 생긴 것은 언제쯤인가요?

인권 변호사라는 제도는 없고요.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범, 양심수들이 생기고 그분들을 아무도 변론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몇몇 변호사들, 특히 4인방이라고 해서 황인철 변호사, 홍성우 변호사, 이돈명 변호사, 조준희 변호사, 이 네 분이 처음에 많이 했죠.

그러다가 그 영향을 받아서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해서 스무명까지 되는데요. 그 전에는 당국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조직을 하지 않고 그냥 개별적으로 사건을 맡아서 했어요. 그러다가 1986년에 들어가니까 대학가에서 전두환 독재타도, 민주헌법 쟁취 투쟁이 아주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공안 당국이 이 학생들을 수십명이 아니라 수백명, 천명씩 구속을 해서 집시법이나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막 기소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 엄청난 시국사건이 터져 나오는 거죠. 마치 그냥 홍수가 나는 것 같이 쏟아져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인권 변론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니까 안되겠다, 조직화하자 해서 그 때 28명의 시국사건 변론 변호사들이 모여서 ‘정의실천 법조회(정법회)’라는 것을 조직해서 그 상황에 대처하게 되었죠.

그래서 그 때 참 변호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 5월에 정법회 멤버들과 그런 사건들을 변호하던 진보적인 소장 변호사들이 합쳐서 51명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을 창립하게 된 겁니다.

▶ 그러시는 동안 정권이나 기관으로부터의 불이익 같은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몇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노골적으로 탄압을 했는데요. 아까 말씀드린 홍성우 변호사 하고 이돈명 변호사는 기무사(그 당시에는 보안사)에 잡혀가서 고난도 당했고요. 징역을 갈래, 2년간 휴업을 할래라고 해서 할 수 없이 2년간 휴업을 하겠다고 하고 나와서 그 두 분이 2년간 강제로 휴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에 대해서는 미행도 하고 정황 수집도 하고 그랬겠지만, 저에 대해서는 뭐 그렇게 노골적으로 나온 것은 없고, 다만 제가 처음에 천안에 가서 변호사 개업했을 때 중앙정보부하고 정보경찰하고 수시로 감시하는 것을 제가 느낄 수 있었습니다.

◇ 6.10 항쟁 때는 우리 집 3대가 데모에 참여하기도 해

▶ 그 때 변론을 해주신 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의 결혼식 주례를 서 주신 적도 있으시다고요?

제가 86년 5월에 ‘5.3 인천소요사건’이라고 큰 사건이 벌어졌어요. 그 때 인천에 가서 학생들을 몇 명 변론을 했는데, 물론 전원 실형을 받았죠. 그래서 제가 많이 절망도 하고 그랬는데, 6년 후에 제가 변론했던 어느 대학교의 총학생회장이었는데 찾아와서 “선생님, 주례 좀 서주십시오.” 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나는 뭐 그렇게 행복한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지금까지 주례를 한 번도 안 섰다. 다른 분한테 부탁해라.” 그랬더니 “선생님이 주례 안 서주시면 저 결혼 안하겠습니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때 한 번 주례를 선 적이 있는데, 주례사가 참 걸작이었습니다. “하객 여러분, 저는 신랑을 교도소에서 만나고 법정에서 만난 인연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만큼 자유로운 세계에서 살게 된 것도 이런 젊은이들이 민주화 투쟁을 하고 감옥에 가고 하는 처절한 투쟁의 결과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젊은이들을 위해서 한 번 큰 박수를 쳐주십시오.” 이런 유례없는 주례사를 했습니다.(웃음) 그런 주례사는 아마 어디에도 없었을 겁니다.

▶ 그 당시에 민주화 투쟁을 하던 분 중에 소위 지금 정치권 쪽으로 진출한 분들도 많죠? 혹시 그런 인연은 없으신지요?

제가 그 변론한 분 중에 고려대 학생을 변론했는데요. 그 분이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별명이 붙은 안희정 씨를 제가 변론을 했어요. 그리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제가 언젠가 시국사건 봉투를 정리하다 보니까 ‘안희정’ 이라는 이름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뒤져보니까 바로 그 사람이예요. 그래서 제가 변론한 사람 중에는 안희정 씨가 정치권으로 갔죠.

▶ 시류에 편승해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그런 길을 택하신 것에 대해서 갈등이나 회의가 솔직히 없으셨나요?

없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저항적인 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일제시대에도 고등계 경찰에 붙잡혀 보름 동안 고문을 당해서 돌아가실 뻔한 적도 있고요. 저도 그런 피를 물려 받았는지 상당히 저항적인 기질이 있었던 것 같아요.

6.10 항쟁 때 우리가 3대가 시위를 했어요. 저는 민변 동지들과 시청 앞 종로로 나가서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변호사들이 시위를 하다가 최루탄을 맞고 막 기어가면서 울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 때 제 아들이 연세대학교 입학해서 1학년이었는데, 얘는 매일 새벽에 최루탄 범벅이 돼서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최루탄을 맞고 들어오면, “아버지, 비비지 말고 그냥 10분 동안 샤워로 흘려내세요.” 하면서 요령도 가르쳐주고, 시위 시작하기 전에는 치약을 바르라고 가르쳐 주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를 가서 뵈었더니 기운이 하나도 없으세요. 그래서 “아버지, 어디 편찮으세요?” 그랬더니, 그 때 82세이셨는데 “아유, 이제 난 데모도 못 하겠다.” 하시는 거예요.

“아버지, 데모하셨어요?” 했더니, 아버지가 그 때 장학 기금을 YMCA에 기탁을 해놓고 매년 수십 명의 학생들한테 장학금을 주고 계셨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종로 2가 YMCA에 가셨다가 거기서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있으니까 지팡이를 짚고서 학생들과 같이 하신 거예요. “독재정권 물러가라. 민주헌법 쟁취하자.” 라고 하시다가 경찰관이 쫓아오면 골목으로 도망을 가셨다가 또 나와서 또 하시고 이걸 2시간을 하셨대요. 그러니까 탈진이 돼서 기운이 하나도 없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사무실에 나와서 마침 그 때 ‘민추’에 계시던 분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어떻게 이 얘기가 기자들한테 들어갔어요. 기자들이 저한테 열심히 전화를 걸어서 “그 아버지를 좀 취재할 수 없느냐?” 해서 제가 아버지께 “어떻게 할까요?” 했더니,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 끊었는데, 그 때 중앙일보 기자인가 어떻게 아버지 집을 알고 찾아가서 취재를 해서 그 신문 전면에 ‘3대가 시위투쟁하는 집안이다’ 해서 기사화 됐던 적이 한 번 있습니다.

그런데 제 아버지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제 아들이 지금 사시 합격해서 변호사인데요. 걔도 또 민변 회원이예요. 그래서 아마 저희는 그렇게 고민하고 ‘저쪽에 설까?’ 하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 그런 걸 ‘반골(反骨)’이라고 표현하고 그랬죠? 그 정의로운 반골이 더 많았던 것 같이 생각이 되네요.

많았죠. 그 때 보면 주로 투쟁하는 사람들은 대학생과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참 처절한 투쟁을 했죠.

▶ 다시 음악 얘기를 해보죠. 그 당시 상황이나 스트레스가 많으셔서 음악이 주는 위로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제가 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예요. 그래서 뭔가를 항상 합니다. 화랑을 돌아다니면서 미술품 수집도 하고, 토기 수집도 하고, 음악도 듣고, 세계 문화유산 답사도 하고 부지런하게 살았어요. 사람들이 “당신은 세 사람 몫을 살았다” 하는 얘기도 하는데요.

제가 음악을 그렇게 열심히 들으면서 그런 것을 통해서 거기서 재충전을 해서 사건을 열심히 했죠. 사건을 해서 돈을 벌어야 또 토기를 사니까요. 그래서 사건 열심히 해서 몸이 피곤해지면 오히려 토기시장에 가서 그것을 사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거기서 재충전을 해서 또 사건을 하고요. 이런 것이 계속 반복이 되는 거죠. 그런 반복이 승화돼서 점점 더 좋아진 케이스죠.

▶ 슈만의 ‘트로이 메라이’도 아주 좋아하신다고요.

네. 그 곡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곡은 슈만이 ‘어린이의 정경’이라고 하는 13곡의 소곡을 합쳐서 만든 ‘조곡’인데요. 그 중의 일곱 번째 곡이예요. 길이는 3분도 안 되는 유명한 멜로디죠. 이것을 애들을 위해서 작곡한 것이 아니고, 슈만 자신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작곡한 어른들을 위한 곡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여러 피아니스트들이 치는 것을 들어봤습니다만,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라고 하는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가 치는 것을 들으면서 제가 여섯 살 때부터 열 살 때까지 4년 동안 살았던 고향을 찾아가는 거예요. 근데 갑자기 안개 같은 것이 끼어서 앞이 희미해져서 여기였던가 저기였던가 눈물을 흘리면서 가는데 아무래도 안 나타나요. 그래서 막 헤매는 꿈을 꿨는데요.

그것이 왜 그랬냐면 호로비츠가 연주를 하면서 일부러 유려하게 흘러가던 멜로디를 멈칫멈칫 일부러 페달을 밟아서 끌어 잡아당깁니다. 그리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헤매면서 주저주저 하고, 그래서 그것이 마치 제가 고향을 찾아가면서 울면서 멈칫멈칫하고 헤매면서 주저주저하는 제 모습과 너무 똑같아요.

그래서 제가 울면서 들었는데, 이렇게 연주한 피아니스트는 호로비츠 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호로비츠는 내가 50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렇게 울면서 찾아가는 그런 것을 예상하고, 그러니까 작곡자의 의도와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감정을 생각하면서 일부러 이렇게 연주한 거죠. 한 번 들어보시죠.


참 좋죠? 한 번 들으면 열 번쯤 듣습니다.

◇ 평생 모은 1,630점의 토기... 국립중앙 박물관에 기증

▶ 이렇게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조예도 깊으셔서 토기박물관을 세워도 될 정도로 귀한 토기를 많이 수집하셨다는 건 유명한 얘기죠. 어떤 계기가 있으셨던 건가요?

우리가 무관심한 사이에 외국인들이 다 사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 안 지나면 토기의 씨가 마를 것이다. 그 당시에도 고미술품 애호가들이 서화 도자기는 수집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토기는 없었어요. 그래서 이러다가는 정말 우리 토기 다 없어지겠다 해서 그럼 토기 전문 박물관 하나 만들어서 후세에 전하자는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1,630점을 수집해서 그것을 전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게 되었습니다.

▶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기증한 분의 이름과 함께 특별실이 마련되어 있죠?

네. 제 이름으로 된 기증실이 한 55평 정도 독립해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 그것은 계속 이어질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영구적입니다.

▶ 책을 보면 토기에 대한 예찬이 많으신데요. 왜 하필 ‘토기’이셨나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서화 도자기는 많이 수입하죠. 물론 언뜻 보기에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토기는 토기대로 장점이 있어요. 그 순박한 산골처녀 같은 질박하고 깨끗하고, 너그럽고, 당당하고 하는 장점들이 있어요. 그래서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게 되고, 심지어는 제가 좋은 토기를 사면 씻지도 않고 한 일주일쯤 침대에서 잠을 잡니다.

▶ 주무시는 것뿐만 아니고 뽀뽀도 하신다면서요?

아, 그건 좀 나중에 말씀드리고요. 한 일주일쯤 껴안고 자다가 그것을 거실에 제일 잘 보이는 곳에 한 달쯤 나뒀다가 다락에 있는 다락에 있는 수장고로 올려가죠. 그러다가 한밤중에 잠이 깨면 못 견디게 보고 싶어서 또 올라가요. 집사람은 자다가 곁에 제가 없으면 또 올라갔구나 하고 차 끓이고 과일 깎아서 올라오죠.(웃음)

그래서 둘이 앉아서 그것을 보면서 여명이 창문으로 쫙 비쳐 들어와서 뿌연 햇빛이 들어올 때 까지 봅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것 몇 개는 아내가 “당신 애인이다” 라고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요. 그 중에 특히 제일 좋았던 것은 아주 값이 싼 백제 토기병이었는데요.

마치 입매무새가 깔끔하고 복스러운 여인처럼 생겼어요. 분을 바른 것처럼 희고 동그란데 백옥같은 피부에 속살이 통통하게 찐 여인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성격도 원만해 보이고 아주 부드러워 보입니다.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면 부드러운 촉감이 마치 여인의 몸을 더듬는 것처럼 야릇한 느낌까지 줍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그것을 볼 때마다 백제 미인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걸 보러 다락에 올라가서 한참 몇 시간씩 쳐다보고 그러다 동창이 밝아오고 하는 거죠.

▶ 밤을 지새울 정도로 대화를 하시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대화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고려시대의 병인데, 목이 약간 상큼하고 어깨가 약간 벌어졌다가 쫙 내려간 술병인데요. 그 목에다가 돋움 무늬를 해놨어요. 양각처럼 밖으로 튀어나오게요. 그것이 제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제 애인인데, 딱 보면 현대의 멋쟁이 여인이 까만 옷으로 치장을 하고 진주목걸이를 두른 형상입니다. 그래서 백제토기와 이것을 나란히 놓고 항상 보는데요. 하나는 천 여년 전의 백제미인, 하나는 현대미인. 그렇게 대비가 되죠.

▶ 사모님이 질시의 의미로 ‘애인’이라고 하신 건 아닌가요?

그렇진 않고요. 제가 하도 좋아하니까 “이건 당신 애인이예요.”하더라고요.

▶ 꼭 가격이 비싸서 좋아하신 건 아닌 것 같아요?

네. 이건 아주 값싼 것들입니다.

◇ 토기들이 박물관으로 가던 날... 오히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가벼워져

▶ 그래도 1천6백여점이면, ‘수십 억원’ 이라고 자료엔 표시가 되어 있던데요?

그 때 1,580점을 1차로 기증했습니다. 그 뒤로 2차, 3차 해서 1,630점을 기증했는데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처음 기증한 1차분을 가지고 국립박물관 측에서 만약 이것을 미술시장에 풀었다면 수십 억원 어치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말씀이 있었다고 그래요. 그것이 신문기사로도 나오고 했는데요. 저는 얼마쯤 되는지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어요.

▶ 그렇게 애지중지 하시던 것들을 아무리 좋은 의미의 기증이지만 수십 억원대의 토기를 기증한다는 것은 너무 아까운 것 아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 힘으로는 박물관을 설립할 수 없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왜냐하면 땅을 사고 그 위에다가 박물관 건물을 짓고 그 박물관을 운영할 수 있는 적어도 백억 이상의 기금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수백억이 더 들어가는 거예요. 도저히 제 힘으로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제가 서면을 보내서 국가에서 이런 박물관을 지어서 운영을 해주신다면 제가 이것을 전부 무상기증하겠다고 했더니 정부에서 예산이 없어서 못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대기업 오너에게 박물관을 지어서 운영해주신다면 제가 이것을 무상기증 하겠다고 했는데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걱정을 하기 시작했죠. 이걸 어떡하나 고민하느라 그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외국에 해외여행을 할 때는 자식들에게 “내가 죽으면 못 돌아오면 이것을 전부 대학이나 공공기관에 기증해라.” 라고 하고 나갔죠. 그래서 그 때의 제 심정은 과년한 딸을 좋은 혼처를 찾아서 빨리 출가시키고 싶은 아버지의 아주 답답한 심정이었죠.

그래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도 ‘갑자기 내가 여기서 차에 치여 죽으면 어떡하나? 그럼 저 토기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어느 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기증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들었어요. 제가 감히 국립중앙박물관은 생각을 못했거든요. 어디 내 컬렉션이 거기에 맞기나 할까 했는데, “그걸 주시면 방을 하나 따로 마련해서 영구히 운영을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것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얼른 기뻐서 기증을 했죠.

▶ 개인이 소장하지 않고 온 국민과 세계 사람들에게 보이겠다는 그 마음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는 그 토기가 한 두 점, 열 점 미만이면 제가 가져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이 백 점, 천 점을 넘어가다 보니까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국민의 것이다, 그래서 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국민한테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해서 기증을 하게 되는데요.

국립중앙박물관 하면 옛날로 보면 왕궁 아닙니까? 그래서 이 토기가 사흘에 걸쳐서 세 트럭이 나갔는데, 그 세 트럭이 나가던 날 다락 수장고로 올라가서 아버님 영정에다 대고 “아버지, 제가 이번에 큰 일 한 번 저질렀습니다.” 라고 했더니 진짜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 잘했다. 네가 드디어 해냈구나.” 하시는 것 같아서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러면서 제 느낌이 뭐냐 하면 이제는 토기에 대한 무거운 관리 책임에서 내가 벗어났다는 생각에 어깨가 가벼워 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해방감이 쫙 밀려오는 겁니다. ‘아, 무엇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명예이고 속박이구나. 이렇게 다 주고 나니까 가볍고 자유롭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니 박물관이 얼마나 고맙습니까?

▶ 토기 전시실이 2층에 있던가요?

네. 기증관 2층에 있습니다.

▶ 여행 얘기도 좀 해봐야겠어요. ‘노마드’ 기질도 있으신 것 같아요.

그것은 아니고요. 제가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아프리카 끝, 중남미, 러시아, 북구라파 등을 많이 다녔습니다. 총 55개국을 다녔습니다. 제가 그렇게 다니게 된 것은 세계사, 세계지리에 관심이 많았고, 일찍이 김찬삼 교수가 쓴 <세계일주 여행기> 3권으로 된 것을 그 교수님으로부터 증정을 받아서 아주 탐독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여행을 다니게 되니까, 여행사에서 만든 패키지 여행은 도저히 마음에 안 들어요.

그래서 어떤 방법을 썼냐 하면 제가 가고 싶은 곳을 다 짜서 여행사를 불러서 이대로 시행을 해달라고 해서 제 마음에 맞는 동호인들을 한 10여명 모집을 해서 그런 여행을 주로 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어쩌다 보니 아마추어 여행 기획자가 되고 했죠. 처음에는 유럽을 많이 다녔는데, 나중에는 인류의 시원, 인류의 역사, 어떻게 해서 인류가 지금 이렇게까지 됐느냐, 그래서 세계 문화유산을 답사해보자라고 생각을 해서 네팔, 인도, 버마, 캄보디아, 자바, 티벳, 돈황, 이집트, 그리스, 에게해에 있는 크레타섬, 멕시코의 아즈텍 문명과 마야 문명, 페루의 잉카 문명, 그리고 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 여행이 실크로드를 횡단한 겁니다.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요. 그래서 세계문화 유산 답사를 하고 세계문화유산 답사기를 쓰게 된 거죠.

▶ 세계문화 유산 답사기를 쓰시던 중에 위암 판정을 받으셨다면서요?

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토기를 전부 기증하고 나서 좀 허전하고 뭔가 했으면 좋겠는데 뭘 할까 망설이던 차에 주위의 사람들이 세계문화유산 답사를 많이 했는데 그 정보를 혼자 가지고 있지 말고 답사기를 써서 그 여행정보를 공유하자고 하는 권고가 있어서 제가 답사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쭉 써서 상당히 여러 편을 변호사 잡지에 연재를 했는데, 어느 날 몸이 좋질 않아서 한 달 가량 계속 쓰다가 검진을 받았더니 ‘위암’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처음에는 아주 초기다, 95%는 틀림없이 완치된다고 했는데 수술을 받고 보니까 3기 초기더라고요. 그래서 생존율이 53%인거예요. 그런데 저는 걱정을 안했어요. 하나도 걱정이 안 되더라고요. 이상하게 침착하고 오히려 ‘하나님! 제가 모차르트나 슈베르트, 베토벤보다도 오래 살았습니다. 이 하찮은 저를 그렇게 오래 살려 주셨으니까 이제 데려 가신다고 해도 저는 원망치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데려가고 싶으시면 데려 가시고, 저를 더 오래 살게 해주시면 오래 살겠습니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투병을 했어요. 그랬더니 나았어요. 지금 5년이 거의 다 돼가는데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 최변호사님은 비유도 다르셨네요. ‘모차르트보다 베토벤보다 제가 더 오래 살았습니다.’ 하고 얘기를 하시는 것 보면 말입니다.

반 고흐, 이상 보다도 오래 살았죠.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고람 전기’라고 있죠? 그 분도 20대 후반에 요절을 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조선시대의 화가입니다. 그런 사람들보다는 제가 많이 살았죠. 64년을 살았으니까요. 베토벤은 57세를 살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7년을 더 살았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가 위암 수술을 받고 석 달이 못 되어서 항암제를 먹고 투병을 하면서도 인사동과 장안평이 그리워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인사동과 장안평에 가서 또 토기를 사왔어요. 그리고 한 달 후에는 진주, 부산, 대구를 다니면서 커다란 상자로 토기 세 상자를 사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는 집사람이 “몸도 편치 않은데, 이제 그만 좀 하세요.” 라고 처음 싫은 소리를 하더라고요.

▶ 클래식 음악, 토기를 사랑하신 것은 최변호사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여쭙고 싶네요.

감히 토기는 제 삶 자체였다는 생각이 들고요. 클래식 음악은 ‘더럽혀진 영혼을 깨끗이 씻어주는 물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저에게도 적용이 되요. 제가 인생을 사는 것이 아주 고달프고 슬플 때는 제일 많이 듣는 음악이 아까 말한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듣는데요. 그러면 맘이 편안해지고 모든 고뇌가 사라져요. 그리고 저한테 위안이 되고 아주 착한 심성을 갖게 해주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은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동반자처럼 느껴집니다.

▶ 사모님은요?

우리 집사람도 저와 마찬가지로 토기도 좋아하고 미술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고요. 저와 같이 취미생활을 했으니까 아주 좋았죠. 부부가 취미가 서로 다르면 힘들다는데 저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 끝으로 ‘Were You There' 라는 흑인영가를 골라 주셨어요.

네.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거기 너 있었니’라고 하는데요. '저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너 거기 있었는가' 하는 의미의 흑인영가인데요. 제가 이 판을 밤에 사 들고 들어와서 틀었어요. 그런데 너무 늦은 밤이라 집사람은 자고 있었죠.

그런데 이것을 탁 트는데 처음에 나오는 남성의 저음 허밍부터 콱 사람을 질리게 하더라고요. 제가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집사람도 일어나서 한 번 더 들어보자고 해서 다시 들었는데요. 로저 와그너 합창단이 불렀고요. 메조 소프라노 샐리 데일리가 불렀는데,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곡입니다. 한 번 들어보시죠.

(표준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김은옥)

※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는 월~토 오후 4시 5분에 방송된다.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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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olute;z-index:20'> LA 다운타운 자바시장 인근에서

위조 모자를 판매하던 한인 업주가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LAPD 위조 수사전담반은 오늘 (어제) 오전 11시쯤

LA 다운타운 메인 스트릿과 17가에 위치한

오거스트 캡스를 급습해

올해 50살의 한인 업주 이계홍씨를 체포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trk 5 0’ 16”

이 씨의 업소를 급습한 경찰은

LA 다져스 등의 프로 스포츠 팀과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의

유명 스포츠 상표가 불법으로 붙여진

모자 백 여 박스를 압수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압수된 모자는 총 1만 6천여개로

시가 4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녹취] trk 3~4 0’ 18”

경찰은 지난 2002년

이 씨가 위조 모자를 판매한다는 신고를 받고

이 씨에게 판매 중지를 명령하는

경고장을 발부했습니다.

5년동안 위조품 판매를 멈췄던 이씨는

최근 다시 위조품 모자를 판매하다가

잠복 수사를 벌이던

LAPD 소속 경관들에게 적발됐습니다.

[녹취] trk 7 0’ 18”

LAPD는 이 씨 외에도 가짜상표를 판매하고 있는

업소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체포된 이 씨는 보석금 2만 달러가 책정된 채

LAPD 파커 센터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1540 라디오 코리아 뉴스 신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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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포인트ㆍ위노블ㆍ케이비테크놀로지 참여

HSM 보안ㆍ스마트카드 솔루션 등 선보여

보안솔루션 기업 소개


이번 2007 U-뱅킹 콘퍼런스 행사 전시회에 참여한 유니포인트(대표 손지웅)는 지난 1996년 설립한 이래 데이터베이스(DB) 실시간 모니터링 솔루션 `DB2스팟` 과 멀티채널 통합 솔루션 `J*Link`, AIX 시스템 운영 관리 및 분석 솔루션 `온튠`(OnTune) 등의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는 e-비즈니스 인프라 및 네트워크보안 솔루션 업체다. 세이프넷코리아가 개발한 USB기반의 HSM 보안인증 토큰 솔루션 `아이키`(iKey)를 국내에 공급하는 총판을 담당하고 있다.

이 밖에도 기업용 소프트웨어 사업, e-비즈니스 인프라 서비스 사업, 시스템통합(SI)/AD & 컨설팅, 기술지원 & 교육 서비스, 관리 및 유지보수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설립된 위노블(대표 이태종)은 이스라엘 보안업체 알라딘의 인증 강화 및 암호관리 솔루션 `e토큰`, 컨텐츠 보안 솔루션 `e세이프`를 국내에 공급하는 보안업체로 포인트섹 사의 디스크ㆍ폴더ㆍ파일 암호화 솔루션도 공급하고 있다.

케이비테크놀로지(대표 조정일)는 지난 1998년 3월 설립이래 콤비카드, 자바카드, 모바일 USIM카드 등의 스마트카드를 개발 및 상용화했으며 스마트카드를 이용한 금융기관의 발급 및 창구 시스템, CD 및 ATM 용 전자지불 시스템, 교통결제시스템, 전자화폐시스템 등을 구축하는 스마트카드 토털 솔루션 업체로서 국내외 스마트카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홍석기자 red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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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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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은 최근 최신화된 System z 메인프레임을 내세운 ‘모던 메인프레임’ 전략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IBM이 밝히고 있는 모던 메인프레임 전략이란, 기존 메인프레임만 강조한 폐쇄적인 역할에서 최신 개방형 기술을 적극 적용하여 주변 이기종 서버들과의 역할을 함께 고려한 유연성을 가지고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말하며, 이를 통해 IT 인프라 허브로서의 메인프레임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전략이다.

한국IBM 측은, 메인프레임은 이 같은 최신화(modernization)의 노력을 지난 수년간 기울여 온 덕분에 최신 개방형 기술과 애플리케이션의 적용에 어느 플랫폼 못지않게 뛰어난 장점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메인프레임 단독으로 IT 환경을 구성하는 것이 모던 메인프레임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이상적 방안이며, 메인프레임을 여러 대의 이기종 서버로 전환하는 것은 복잡하고 불안정한 구조적 한계 때문에 성능이나 유연성 측면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이기종 환경으로 구성된 인프라 환경에서도, 단순히 유닉스 서버들로만 구성하는 시스템보다는 중앙에 메인프레임을 위치하도록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으로 적합한 솔루션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금융권 고객들은 메인프레임이 보유한 높은 수준의 가상화 기술과 에너지 절감 기술에 기반해 보다 관리가 용이한 시스템 효율화를 달성, 총소유비용(TCO)을 절감할 수 있고,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등의 이슈에 대비한 충분한 보안성을 획득할 수 있으며, 보다 중앙집중적인 데이터 관리 환경 구축으로 고객의 비즈니스의 성장 기회에 신속한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 한국IBM의 주장이다.

이를 통해 최근 IT 업계의 가장 핵심적인 화두인 서비스 기반 아키텍처(SOA)의 기본 전략을 가장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IT 인프라 환경을 제공하는 등의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IBM은 최근 KB국민은행이 차세대 계정계 시스템 플랫폼을 선정하기 위해 실시한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에서도 이 같은 장점이 입증됨으로써 그간 IBM이 주장하던 모던 메인프레임의 IT 허브로서의 역할이 실제적으로 검증되고 확인되었다고 전했다.

이번 테스트의 목적은 시스템의 운영성과 보안성, 확장성, 그리고 대량 거래처리에 대한 가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었는데, IBM의 System z 메인프레임은 메인프레임 자체의 성능만을 검증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사용 환경을 고려하여 최종 사용자 앞에 유닉스나 NT를 이용한 중간 레이어까지 두고 성능 테스트를 한 결과, 단순히 유닉스 서버들로만 구성하는 것보다 중앙에 메인프레임을 위치하는 것이 보다 좋은 솔루션임을 입증했다는 주장이다.

한국IBM 측은 이와 관련, 0% 장애에 도전하는 안정성 및 확장성, 보안성 등 메인프레임의 기본 가치에 리눅스와 자바 등 개방형 최신 기술을 적극 지원하는 등 유연성을 추구하는 노력이 결합된 최신 메인프레임의 가치가 시장에서 환영받고 있는 증거라고 밝혔다.

오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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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olute;z-index:20'> <아이뉴스24>

한국IBM(대표 이휘성)은 메인프레임 서버인 시스템z가 기업의 모든 정보기술(IT)시스템에 허브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최적의 플랫폼이라며 이를 내세운 '모던 메인프레임' 전략을 8일 발표했다.

모던 메인프레임 전략이란 메인프레임에 TPC-C 프로토콜이나 자바 플랫폼 등 최신 개방형 기술을 적극 적용해 다른 업체의 다른 기종 서버들과 연결해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기업의 핵심 업무를 수행할만한 가용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전략이다.

한국IBM에 따르면 메인프레임은 지난 수년간 최신화(modernization) 노력을 기울여 온 덕분에 최신 개방형 기술과 애플리케이션 적용 면에서 뛰어난 장점을 갖추게 됐다.

단순히 유닉스 서버들로만 구성하는 시스템보다는 중앙에 메인프레임을 위치하도록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으로 적합한 솔루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메인프레임 단독으로 IT 환경을 구성하는 것이 모던 메인프레임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이상적 방안이라고 회사측은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IBM은 최근 KB국민은행이 차세대 계정계 시스템 플랫폼을 선정하기 위해 실시한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에서도 이같은 장점이 입증돼, 그간 IBM이 주장하던 메인프레임의 IT 허브로서의 역할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KB국민은행이 실시한 테스트의 목적은 시스템의 운영성과 보안성, 확장성, 그리고 대량 거래처리에 대한 가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었는다. 이에 따라 단순히 유닉스 서버들로만 구성하는 것보다 중앙에 메인프레임을 설치하는 것이 보다 좋은 시스템 구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 한국IBM의 설명이다.

한국IBM은 이와 관련, 0% 장애에 도전하는 안정성 및 확장성, 보안성 등 메인프레임의 기본 가치에 리눅스와 자바 등 개방형 최신 기술을 적극 지원하는 등 유연성을 추구하는 노력이 결합된 최신 메인프레임의 가치가 시장에서 환영받고 있는 증거라고 밝혔다.

이와함께 한국IBM은 경쟁사들이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메인프레임 교체' 전략을 의식한 듯 "메인프레임을 여러 대의 이기종 서버로 전환하는 것은 복잡하고 불안정한 구조적 한계 때문에 성능이나 유연성 측면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경쟁 진영을 깎아내렸다.

특히 메인프레임 자체의 성능과 안정성, 유연성을 제외하더라도 유닉스 기반의 분산 환경으로 시스템을 구성하면 각각의 서버가 소모하는 전력이나 공간 비용, 유지보수 비용이 메인프레임보다 더 많이 들어, '성능은 떨어지고 위험성은 증가하며 돈도 많이 드는' 소모적인 플랫폼이라고 한국IBM은 지적했다.

/강은성기자 esth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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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olute;z-index:20'>  ‘이제는 모던 메인프레임시대로 간다.’

 한국IBM(대표 이휘성)은 기존 메인프레임에서 개방형 기술을 가미한 ‘시스템 z’ 서버가 기업의 IT 인프라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플랫폼 임을 강조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모던 메인프레임’ 전략을 8일 발표했다.

 모던 메인프레임은 기존 메인프레임에 TPC-C 프로토콜이나 자바 플랫폼 등 최신 개방형 기술을 적극 적용해 다른 기종 서버들과 연결해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기업의 핵심 업무를 수행할만한 가용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갖춘 서버 플랫폼을 의미한다.

 회사 측에 따르면 메인프레임은 지난 수년간 최신화(modernization) 노력을 기울여 온 덕분에 최신 개방형 기술과 애플리케이션 적용 면에서 뛰어난 장점을 갖추게 됐다.

 단순히 유닉스 서버들로만 구성하는 시스템보다는 중앙에 메인프레임을 위치하도록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으로 적합한 솔루션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메인프레임 단독으로 IT 환경을 구성하는 것이 모던 메인프레임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이상적 방안이라고 회사 측은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IBM은 최근 KB국민은행이 차세대 계정계 시스템 플랫폼을 선정하기 위해 실시한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에서도 이같은 장점이 입증돼 그간 IBM이 주장하던 메인프레임의 IT 허브로서의 역할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단순히 유닉스 서버들로만 구성하는 것보다 중앙에 메인프레임을 설치하는 것이 보다 좋은 시스템 구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 한국IBM의 설명이다.

 한국IBM은 이와 관련 0% 장애에 도전하는 안정성·확장성·보안성 등 메인프레임의 기본 가치에 리눅스와 자바 등 개방형 최신 기술을 적극 지원하는 등 유연성을 추구하는 노력이 결합된 최신 메인프레임의 가치가 시장에서 환영받고 있는 증거라고 밝혔다.

 한국IBM은 또 금융권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메인프레임 다운사이징’에 대해 “메인프레임을 여러 대의 이기종 서버로 전환하는 것은 복잡하고 불안정한 구조적 한계 때문에 성능이나 유연성 측면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명승욱기자@전자신문, sw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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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마이크로시스템즈가 자바 소프트웨어를 오픈 소스화하는 프로젝트는 아직 초기 단계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오랫동안 제휴를 거부해온 레드햇과 제휴를 이뤄내는 큰 성과를 거뒀다.

레드햇은 5일(미국시간) 썬의 ‘오픈JDK 커뮤니티 TCK 라이선스 협정’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레드햇은 자바 표준 에디션(자바 SE)과의 호환성을 테스트하기 위한 기술 호환성 킷(TCK)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레드햇의 주요 타깃인 서버 시장에서 자바는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 회사는 한때 자바와의 강한 결합에 소극적이었으며, 자바를 반독점했던 썬을 비판한 적도 있다.

그러던 중 마침내 두 회사의 협력 체제가 갖춰졌다. 자바 서버 소프트웨어의 서포트 서비스를 판매하는 레드햇의 제이보스(JBoss) 부문 최고 기술 책임자(CTO)인 사샤 라보리는 “레드햇은 자바 기술을 오픈 소스화하는 썬의 용기 있는 결정을 전면적으로 지지한다. 10년 이상 계속될 썬의 리더십으로 자바 기술의 생태계는 향후, 혁신이 가속하는 시대를 맞이해 다양한 환경에 널리 퍼짐으로써 혜택을 받을 것이다”라며 환영했다.

물론, 이 말은 셀 수 없이 많은 언론 보도의 상투적인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2004년에 레드햇의 CTO였던 마이클 티먼이 썬의 CEO인 조나단 슈워츠에게 다음의 말을 하고 난 후 라보리가 한 말의 중량감과 설득력은 더 강해졌다.

“당신은 오픈 소스 커뮤니티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일까? 만약 오픈 소스 커뮤니티를 사랑한다면 자바를 오픈 소스화 해야 한다. 자바를 오픈 소스화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적어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왜 우리가 당신을 신뢰해야 하는가?”

레드햇이 2006년에 인수한 제이보스는 당시 이미 썬의 자바 개발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서버용 ‘자바 엔터프라이즈 에디션’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이번 제휴로 인해 실제로 자바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대상은 핵심 런타임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자바 SE로까지 확대된다. 레드햇은 이 제휴를 통해서 독자적인 자바 런타임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계획이다.

제이보스 부문의 제품 관리 담당 부사장 션 코놀리는 “라이선스 계약에 동참함으로써 오픈JDK를 포함한 썬의 다양한 오픈 소스 프로젝트에 레드햇과 제이보스 부문의 기술자들이 정식으로 협력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추어졌다”고 말했다. @


Stephen Shankland ( CNET 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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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olute;z-index:20'> 한국IBM이 최근 국민은행 차세대시스템에 IBM 메인프레임이 주전산시스템으로 채택된 것을 계기로, '모던 메인프레임' 전략 활성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돼 귀추가 주목된다.

 

9일 한국IBM에 따르면, 회사측이 추진하고 있는 '모던 메인프레임' 전략은 기존 메인프레임만 강조한 폐쇄적인 역할에서 최신 개방형 기술을 적극 수용, 이기종 서버들과의 역할을 함께 고려한 유연성을 가지고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그동안 폐쇄성의 상징이었던 메인프레임이 좀 더 유연해졌으며 이 같은 변화를 통해 IT 인프라 허브는 메인프레임이 제격 이라는 것이 '모던 메인프레임'전략의 핵심이다.

 

그동안 IBM의 메인프레임은 과거의 영화와 개방화되는 추세에 부합하지 못하며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쌓아온 주요 레퍼런스를 유닉스 진영에 넘겨주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리눅스, 자바 등 개방형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을 통해 어느 플랫폼 못지않게 충분히 유연해진 만큼, '모던 메인프레임' 전략을 통해 잃어버린 시장을 다시 되찾겠다는 의지가 읽혀진다.

 

특히, 국민은행의 사례에서 보듯이 메인프레임과 유닉스 서버간의 결합이 당초 예상됐던 이기종간의 통합 및 관리의 어려움, 비용증가가 아닌 전체적인 성능향상 결과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한국IBM은 고무된 상태다.

 

국민은행의 경우 시스템의 운영성과 보안성, 확장성, 그리고 대량 거래처리에 대한 가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것이 한국IBM의 주장이다.

 

한국IBM은 이번 국민은행 사례가 메인프레임 자체의 성능만을 검증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사용 환경을 고려해 최종 사용자 앞에 유닉스나 NT를 이용한 중간 레이어까지 두고 성능 테스트를 한 결과, 단순히 유닉스 서버들로만 구성하는 것보다 중앙에 메인프레임을 위치하는 것이 보다 좋은 솔루션임을 입증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IBM이 국민은행 사례를 계기로 향후 금융권의 차세대 프로젝트에서 유닉스 광풍을 막아낼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채수웅 기자> 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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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V들이 정말 좋아할만한 것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레드햇은 엘라스틱 컴퓨트 클라우드(EC2)에서 레드햇 엔터프라이즈 리눅스(RHEL) 5.x 인스턴스를 서비스 제품으로 제공하기 위해 아마존과 힘을 합쳤다.

아마존에서 호스팅하는 월정액 가입 서비스(베타)를 이용하면 ISV이건 엔터프라이즈이건 간에 개발자들이 애플리케이션을 RHEL에 맞추어 개발하여 서비스로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애플리케이션 소유자들은 자신의 사용량 및 지원 인프라의 요구에 따라 (소위 종량제 방식으로)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 호스팅 비용을 내면 된다.

또한 레드햇은 지난 3월에 RHEL 5.0을 내놓은 데 이어 7일 RHEL 5.1 릴리스를 발표했다. 이 새로운 포인트 릴리스에서는 가상화 장점을 훨씬 더 깊고 공격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성능도 상당히 향상되었다.

뿐만 아니라, 레드햇은 2008년 중반에 레드햇 어플라이언스 OS 및 관련 개발 킷을 필두로 일련의 소프트웨어 어플라이언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것을 이용하면 기능 면에서 타깃에 맞추어 최적화된 쉽게 배치할 수 있는 어플라이언스에 플랫폼, 미들웨어 및 애플리케이션으로 구성된 전체 패키지를 내장시킬 수 있다.

목표는 개발자 및 ISV들에게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에 대한 많은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그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RHEL의 오픈 소스 인프라 스택에 배치하기만 하면 된다.

레드햇은 유지 관리 및 지원 서비스 비용을 받거나 온디맨드 가입 방식으로 이용료를 받는다. 개발자들은 RHEL만 목표로 하면 되기 때문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 어플라이언스(애플리케이션+OS+필요한 스택)를 통해, 그리고 (아마존을 포함한)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온디맨드 호스팅 방식을 통해 전용 서버나 리눅스 가상 인스턴스에 직접 배치할 수 있다.

레드햇은 이처럼 넘칠 정도로 많은 배치 모델과 방식을 제공하는 것을 새로운 리눅스 자동화 전략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레드햇은 엔터프라이즈 자바 지원 문제에서도 썬마이크로시스템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바가 오픈 소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레드햇은 가상화 옵션을 새롭게 받아들여 레드햇에서 윈도우 인스턴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따라서 (윈도우 버전에 관계 없이) 사실상 모든 윈도우 32 비트 애플리케이션을 RHEL에서 지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주요 리눅스 공급사인 레드햇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곧 내놓을 비리디언 하이퍼바이저 관련 작업도 할 계획이다. 버리디언 하이퍼바이저는 리눅스 기반 젠(Xen) 하이퍼바이저(현재 이름)에 근거한 제품이다.

대기업 차원에서 레드햇은 전세계의 거의 모든 종류의 개발자들에게 더 많은 오픈 소스 개발 옵션을 제공하려고 하고 있다. 또한 통신 사업자들을 위하여 레드햇은 인프라를 간소화하면서도 강력한 성능을 제공하려고 하며, 활용도와 용량 관리 능력은 강화하고 라이선싱 비용과 하드웨어 비용은 더 낮추어 총 비용을 낮추려고 노력한다.

레드햇은 RHEL이 IBM의 시스템 Z를 포함하여 메인프레임에서 빠른 속도로 기반을 넓히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발표들에서 필자가 포착한 것은 레드햇이 개별적인 대기업 부문에서 쌓은 리눅스 배포 역량을 전용 서버 및 블레이드 시장 밖으로 확대하고 싶어하며 호스팅 전문 기업, 통신 사업자,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공급사, 온디맨드 ISV 등이 다음 10년 동안 모든 애플리케이션을 배치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사실상의 업계 표준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레드햇은 가상화, 클러스터링과 유틸리티 컴퓨팅, 멀티코어 하드웨어/병렬성, 그리고 점점 유리해지는 온디맨드 가입 방식의 경제적인 모델 등을 중심으로 한 트렌드에 의지하여 가격은 낮지만 성능이 뛰어난 기본 공급자가 되려고 하고 있다.

가상화 성능의 기반이 넓어지고 다양한 OS의 인스턴스에서 실행할 수 있는 서버 애플리케이션의 종류가 더 많아지게 되면, 더 많은 (그리고 거의) 모든 것이 동등한 수준이 되어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 제공에 대해 순수한 가격 대비 성능 비교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서비스를 만들거나 호스팅을 하든, 아니면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해 돈을 벌든 간에, 결국은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좋은 방식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윈도우, 솔라리스/오픈 솔라리스, 레드햇 리눅스 등에서, 다양한 종류의 중복되는 플랫폼에서 경쟁이 이루어지게 되며, 결국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나고 배치하기 편한 환경을 호스팅하는 쪽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 레드햇의 목표는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현재 매우 선전하며 목표를 상당히 잘 달성하고 있다.

레드햇은 대담하게도 2015년까지 시장 점유율을 두 배로 늘리고 전세계 서버 인스턴스의 절반 이상을 지원할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드"나 "유틸리티"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


Dana Gardner ( ZD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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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젊은직장인들의고민 (1) - 이직◆

"인생에도 장미꽃과 찔레꽃 두 가지 종류의 길이 있다고 생각해. 일찍 빛을 보고 무난하게 살아가는 찔레꽃 같은 인생이 있는가 하면, 낮은 위치에서 시작해서 인내의 시간을 거치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장미꽃과 같은 인생이 있는 거지. 둘 중 어떤 인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자기가 감내해야 하는 삶의 과정이 달라지게 되는 거야."(장미와 찔레 중)

장미(Rose)냐, 찔레(Wild rose)냐. 최근 출간된 자기계발서 '장미와 찔레'에서 서울대 조동성 교수와 제자 김성민 씨는 직장인 인생 경로를 두 가지 꽃에 비유했다.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해 안정적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찔레라면 바닥부터 월급쟁이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장미다. 어차피 장미꽃 인생에 접어들었다면 어떻게 꽃을 피우느냐가 중요하다.

물론 장미꽃 인생에도 두 가지 갈레가 있다. 한 조직에 모든 것을 바치는 '평생 직장형'과 회사를 옮겨다니는 '순차 이전형'이다. 과거에는 회사를 자주 옮겨 다니는 것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대여섯 번씩 직장을 옮긴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물론 정답은 없다. 선택이 있을 뿐이다. 신중하게 이직을 검토했다면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남은 과제다.

서준호 웅진코웨이 해외상품기획 팀장(33). 그는 대전에 있는 한 벤처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삼성전기, 동부하이테크 등을 거쳐 웅진코웨이에 안착했다.

대기업을 과감히 떠나 중견기업으로 옮긴 이력이 특이하다. 서 팀장은 "삼성전기에서 동부하이테크로 옮긴 것은 단조로운 연구원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마케팅쪽 일을 하다가 소비기기 시장이 뜨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껴 웅진코웨이로 다시 옮겼다"고 말했다.

서 팀장은 "이직이라는 게 공부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며 "경영자가 볼 때는 오이를 잘 팔던 사람이 배추도 잘 파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한다. 무슨 말일까.

이직을 염두에 뒀다고 본업에 소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맡은 일에서 높은 성과를 내는 편이 유리하다는 경험담이다.

전 직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이직을 결정하면 늦어도 한 달 전에 회사에 알리고, 철저하게 인수인계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지금도 옛 직장동료들과 가끔 소주잔을 기울이며 인맥을 유지하고 있다. 연봉에 연연하지 말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서 팀장은 "회사로선 경력자를 뽑으면 연봉의 3배 값어치를 해줘야 한다"며 "연봉보다 젊었을 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신관련 업체에서 일하는 남진수 과장(36ㆍ가명). 그는 이번 직장이 벌써 다섯 번째다. 처음 두 곳은 회사가 어려워져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와야 했다.

이후 거쳐온 내비게이션 업체와 멀티미디어방송(DMB) 회사는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남 과장은 "내비게이션과 DMB는 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점을 깨달았다"며 "언젠가 내 이름을 단 브랜드 제품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회사를 옮긴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도 중요하지만 업황도 이직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는 이직을 위해 착실히 학업도 병행한 노력파에 속한다. 직장생활 중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또 다른 대학원에서 지적재산권을 공부 중이다.

남 과장은 "이직을 생각했다면 시간을 갖고 시장 상황부터 철저히 파악한 뒤 틈틈이 공부하라"며 "그리고 절대 전 직장에 적을 만들지 말라"고 조언했다.

회사를 자주 옮겨다니다보니 편견도 따른다. 그는 "또 옮길 것이란 의심을 사는 때가 많다"며 "면접 때 자신이 회사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과 비전을 충실하게 설명하고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전이 없는 회사는 과감히 버리라는 조언도 있다. 농심에 근무하는 이상호 씨(28ㆍ가명)가 그런 사례다.

첫 직장인 전자업체에선 구조조정으로 팀이 해체되는 불운을 겪었다. 두 번째로 옮겨간 중소 컨설팅 회사는 분위기는 좋았지만 회사 비전이 기대에 못 미쳤다.

이씨는 "한 회사에 2년 이상 근무한 적이 없어 매번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야 하는 부담이 컸다"며 "이를 악물고 하루에 영어공부를 5시간씩 했고 컴퓨터관련 기술도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직에 대한 두려움부터 없애라고 말한다. 한두 번 이직을 해보면 새로운 회사에 대한 적응력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얘기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정용대 씨(32). 정씨도 이직에 성공한 사례다. 졸업 직후 한 종교단체에서

전산 업무를 담당했지만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과감히 사직서를 제출하고 한국산업인력공단 소프트웨어 전문가 과정인 '자바 개발자 과정'에 등록해 6개월간 교육을 받은 뒤 대우정보시스템으로 자리를 옮기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직을 할 때는 자신이 진정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며 "확신이 섰다면 시간과 비용을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래에셋증권에서 조선업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 이재규 씨(30)는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꽉 잡은 예다.

그는 올해 7월까지 대우조선해양에서 기업설명(IR)을 담당했다. 이씨는 "재무, 홍보, 전략 등을 아우르는 일이 좋았지만 애널리스트를 상대로 일하다 보니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마침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미래에셋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과감히 '변신'을 택했다. 애널리스트가 된 뒤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1시가 넘어서야 퇴근하는 등 업무 강도는 훨씬 세졌지만 이직에 만족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 연기홍 차장 (팀장) / 신헌철 기자 / 이명진 기자 / 이상덕 기자 / 김호영 기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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