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는 변덕스럽다. 번잡하고 화려한 야경을 즐길 수 있는 도시를 찾는가 하면, 시끄러운 속세가 싫다고 한가한 섬을 동경한다. 함박눈을 밟아보고 싶다고 지구 반대편의 추운 곳을 힘들게 찾으며, 바닷가 야자나무에 몸을 기대고 느긋하게 오후를 보내는 자신을 그려보기도 한다. 당신이 옷장 깊숙이 박혀 있던 철 지난 수영복을 입고 싶을 때, 자판기에서 700원짜리 망고 주스 버튼을 무심코 누를 때, 맹그로브 나무가 무엇인지 백과사전을 뒤적일 때 난 랑카위를 떠올린다.

◆좋은 여행지는 있지만 나쁜 여행지는 없다

여행기자는 곤혹스럽다. 취재를 다녀온 뒤 여행지에 대한 장단점을 글과 사진으로 명쾌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 관광청이나 리조트 홍보 담당자가 아닌 이상 일방적인 홍보는 더더욱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취재기자를 초청한 주최 측이 당황할 정도로 안 좋은 점만 부각시킬 수도 없다. 이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최근 여행잡지들이 홍보매체로 전락했다고 불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 여행지는 있지만 나쁜 여행지는 없다. 여행을 다녀와서 무덤덤한 추억만 남겼다면 분명 여행지가 나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곳을 선택하지 못한 탓이다. 여행 상품을 계약하기 전에 이번 휴가 기간 동안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냉정한 자문자답이 필요하다.

랑카위 이야기를 하면서 '눈부신 태양, 깨끗한 백사장'이란 구태의연한 말은 굳이 필요없다. 동남아시아의 이름난 휴양지는 달콤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해변과 리조트 등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 가방을 꾸리면서 긴장감 있는 일탈을 꿈꾼다면 서둘러 랑카위는 포기하기를 바란다. 유감스럽게도 랑카위에서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매우 1차원적이다. 어떠한 긴장감도 없으며 예정에 없는 일정도 없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만이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랑카위는 아직 사람들의 때가 덜 묻었다. 이미 많이 알려진 동남아시아 휴양지에서는 느긋하게 쉬기보다는 사람 구경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정도로 관광객들이 북적이지만 랑카위는 어느 곳이나 조용하다. 랑카위 섬의 최대 번화가인 쿠아(Kuah)타운만 하더라도 한산하다. 일부 여행자들은 '랑카위는 사람 보는 재미가 없다'고 불평하지만 값비싼 숙박료를 지불하고 휴양지에 온 이유를 먼저 생각해보자. 이슬람국가답게 어떠한 흥청거림이나 흐느적거림도 없다. 관광객들을 붙잡는 호객 행위도 보기 힘들다.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아 느긋한 휴가를 보내려는 연인,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랑카위 리조트에서 쉬다가 섬 관광에 나서고 싶다면 크게 3가지를 추천한다. 랑카위 관광은 산호섬에서 스노클링을 하는 코랄(Coral) 투어, 9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랑카위의 대표적인 섬들을 배로 둘러보는 아일랜드 호핑 투어, 킬림 강을 따라 맹그로브 습지와 박쥐들의 서식지인 동굴을 보는 맹그로브 리버 크루즈가 대표적이다.


코랄 투어의 출발은 섬 중심지인 쿠아타운 페리터미널에서 시작한다. 페리터미널인 제티포인트(Jetty Point)는 페낭, 태국을 오가는 정기 선박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시내 중심지보다 큰 쇼핑센터도 있으며 하루종일 사람들로 북적인다. 산호섬 관광에 이용되는 배는 크루즈용으로 냉방시설이 있는 1, 2층 객실로 구분되어 있으며 1층에는 매점도 있다. 출발한 지 1시간 30분 정도면 '보석의 섬'이라고 불리는 파야(Pulau paya) 섬에 도착한다.

섬 앞에 정박해 있는 바지선에서 스킨스쿠버, 스노클링 장비를 빌리면 열대어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이곳에서는 아직까지 열대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허용되기 때문에 현지에서 판매하는 빵가루를 구입하면 좀더 재미있게 열대어를 관찰할 수 있다. 그동안 푸껫, 하와이 등 유명한 스노클링 관광지를 취재했었지만 이곳이 가장 역동적이다. 다른 곳들은 해변에서 스노클링을 하기 때문에 수심이 얕아 열대어가 다양하지 않았지만 랑카위 스노클링은 섬 앞에 있는 바지선에서 잠수한다. 수심이 깊어 초대형 물고기나 상어까지 볼 수 있다. 스노클링 후에는 보트를 타고 섬 선착장에 도착해 파야 섬 해변가까지 올라온 열대어를 보거나 해변에서 일광욕이나 수영을 즐겨도 좋다.

15인승 스피드보트로 랑카위 섬들을 둘러보는 아일랜드 호핑 투어는 제일 먼저 플라우 다양 분팅(Pulau Dayang Bunting)이라는 섬을 방문한다. 플라우 다양 분팅은 랑카위 군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임신한 처녀의 섬'이란 뜻이다. 섬이 임신한 여자가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섬 선착장에 내리면 먼저 원숭이가 반긴다. 섬에서 사는 야생 원숭이들로 관광객들에게 먹이를 달라고 조른다. 무심코 과자나 청량음료를 들고 있다가 원숭이들에게 빼앗길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언덕길을 5분 정도 오르면 다양 분팅(Dayang Bunting)호수가 나온다. 빗물로 만들어진 이 호수에서 수영도 할 수 있으며 산책로를 통해 호수 주변도 둘러볼 수 있다. 다음은 베라스 바사(Beras Basah)섬에 들른다. 이곳에서는 패러글라이딩이나 바나나보트 등 해양 레포츠를 즐기거나 바닷가 그늘에 앉아 수평선을 보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다.

랑카위 섬 주변에 있는 맹그로브 늪지를 배로 다니며 박쥐 등 야생동물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맹그로브 투어는 랑카위 투어의 핵심이다. 동남아시아 휴양지마다 산호섬 관광이나 호핑 투어는 있지만 맹그로브 투어는 그렇게 많지 않다. 말레이시아, 태국 등 일부 지역에서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랑카위에서 시간이 없다면 다른 것보다 맹그로브 투어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선착장에서 9인승 보트를 타고 킬림(Kilim) 강을 달리면 구아 케라와(Gua Kelawa)라는 박쥐 동굴에 도착한다. 동굴 입구에 들어서면 박쥐들의 배설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 미리 가져간 손전등으로 천장을 비추면 박쥐 수천 마리가 붙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점심식사를 위해 선착장에 도착하면 투어 대표 소재인 맹그로브 원시림을 볼 수 있다. 맹그로브는 아열대식물로 킬림 강 주변에 많이 서식한다. 늪에 엉켜 있는 맹그로브 나무는 가지가 어느 정도 자라면 땅에 떨어져 다시 위로 자란다. 이렇게 촘촘히 자란 나무는 해일이나 지진 때 방파제 역할을 해서 2차 재해를 예방하기도 한다. 선착장 주변에는 양식장이 있어서 현지에서 양식되는 어류를 볼 수 있으며, 즉석에서 요리도 해준다.

랑카위 섬 내부 관광 가운데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랑카위 전망대다. 전망대는 섬 북서쪽 끝 오리엔탈 빌리지에 있으며 케이블카를 이용해야 한다. 케이블카는 길이 2.2km에 달하며 해발 710m의 전망대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정상에는 2개의 전망대가 있는데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두 곳을 오가며 경치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케이블카 왕복 운임은 25링깃(1링깃은 약 330원)이다.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는 오리엔탈 빌리지는 동양의 각국 건축물과 문화가 전시된 테마파크로 우리나라 테마파크와 비교해 규모는 작지만 내부를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아 둘러볼 만하다. 랑카위 전설의 주인공인 '마하수리'묘소도 가볼 만한 관광 명소다. 먼 옛날 아름답고 총명했던 마하수리는 추장 부인의 질투를 산 나머지 무고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는 '자신이 죄가 있다면 붉은 피를 흘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새하얀 피를 흘리고 이 섬에서 8세대 동안 재앙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랑카위에서는 흉작과 어획량 급감 등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8세대가 지난 후 마하수리와 얼굴이 같은 아이가 태어났는데 20세가 되어서야 랑카위에서 재앙이 사라졌다. 현지 사람들은 마하수리의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고 있으며 랑카위 공항 대합실에 걸려 있는 마하수리의 초상화는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다.

이밖에 수요일 저녁 쿠아타운에서 열리는 노천 시장, 말레이시아 최대의 수족관인 언더워터 월드(Underwater World), 랑카위 악어 농장 등이 있다. 하지만 휴양 여행지의 성격상 많은 곳을 둘러볼 수는 없다. 랑카위가 아니면 좀처럼 하기 힘든 맹그로브 투어를 먼저 선택한 뒤 시간이 남으면 다른 투어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진ㆍ글/이진욱 기자(cityboy@yna.co.kr), 협찬/말레이시아 관광청ㆍ말레이시아 항공ㆍ메리터스 펠랑기 비치 리조트

(대한민국 여행정보의 중심 연합르페르, Yonhap Repere)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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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enes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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