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인터뷰] “빨간우산, 노란우산, 뭐를 원해. 너에게 줄게∼ 갈색가방, 하늘색가방. 뭐를 원해. 원하는 걸 줄게” 클로즈업 된 화면 위로 예쁘장한 여자 얼굴과 풍경들이 한 장씩 지나간다. 요즘 TV 좀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 어디서 한번쯤 스쳤을 것이다. 영화배우 김태희가 출연해 최근 방송 전파를 타고 있는 CF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상물을 광고 패러디라고 생각하면 원작자가 섭섭할 것 같다. 인디가수 ‘요조(26·본명 신수진)’가 사진을 찍고 노래까지 불러 인터넷에 먼저 내놨으니 말이다.
우연의 뮤지션 ‘요조’ “귀여운 하이톤 달란트이자 한계“
요조는 광고 외에도 TV 드라마 OST 러브콜을 꽤 받았다. 윤은혜·공유가 출연한 MBC 인기드라마 커피프린스에서 ‘커피 한잔 어때’와 ‘고고찬’이란 노래를 불렀고 최근 종영한 MBC 메디컬드라마 뉴하트 ‘모닝스타’로도 목소리를 알렸다.
또 드렁큰타이거와 허밍 어반 스테레오, 015B 등 마니아층을 보유한 가수들의 피처링 작업을 도왔다. 특히 이지린의 1인밴드 허밍 어반 스테레오 1집에서 불렀던 ‘바나나셰이크’와 ‘샐러드기념일’ , 015B 7집 ‘처음만 힘들지’란 노래가 익숙하다. 아기같이 속삭이는 목소리는 블로그와 미니홈피 타고 감수성 넘치는 네티즌의 귀를 유혹했다.
그러나 노래 유명세에 비해 요조의 실체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적었다. 그도 그럴것이 처음 음악작업을 했던 허밍 어반 스테레오 1집은 정식 녹음도 없이 발매됐다. 그는 “동네친구인 지린이랑 장난삼아 녹음한 노래가 나도 모르게 앨범에 담겨져 세상에 나와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다”며 “‘요조는 우연의 뮤지션’이라고 적어달라”고 웃었다.
정규 앨범 하나 없는 인디 가수에 광고·드라마 러브콜이 잦은 이유는 뭘까. 요조는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 때문에 다른 가수들과 작업을 할 때 “코맹맹이 소리 좀 안 낼 수 없냐” “귀여운 척 좀 그만해라” 등의 얘기로 상처 받은 적도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평소대로 목소리를 냈을 뿐인데 ‘귀여운 척’이라고 하니 ‘어떻게 하면 덜 귀엽게 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평소 말투는 ‘깜찍’과 거리가 멀다. 그녀는 “귀여운 척한단 소리를 듣기 싫어 오히려 낮고 터프하게 말하는 버릇이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는 “하이톤 목소리는 제 달란트(재능)이자 한계”라고 자평했다.
귀여운 소녀 보단 농염한 아가씨
지난해 11월 요조는 그녀의 이름을 앞세운 스페셜 앨범‘요조 위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를 냈다. 2인조 인디밴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함께 작업한 앨범에서 요조는 2곡의 노래를 쓰고 전 곡을 불렀다.
솔로가 아닌 다른 밴드와 합작한 연유가 독특하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노래를 평소 좋아했던 요조는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들을 운명처럼 만난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그들이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멤버였던 거 있죠.(웃음) 저도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노래를 부른 적이 있어서 수줍게 말을 걸었는데. 또 알고 보니 허밍 어반 스테레오와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가 같은 회사 소속이었고…. 그렇게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만나 공연도 하고 음악도 같이 하게 됐죠.”
요조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코러스로 참여하다 나중엔 비중있는 객원 보컬로 존재감을 키워갔다. 팬들이 “요조가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소속이냐. 아니냐”를 헷갈려 할 정도였다. 그러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리더 김민홍이 요조를 위한 앨범을 제작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 노래가 ‘마이 네임 이즈 요조(my name is yozoh)’란 곡이다. 최근 김태희가 출연한 올림푸스 디지털카메라 광고에 사용돼 유명해졌다. 광고 감독이 인터넷 서핑을 하다 ‘이 노래다’ 싶어 요조를 직접 만나 광고에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알듯말듯한 요상한 가사와 반복되는 단순한 리듬으로 이뤄진 ‘마이 네임 이즈 요조’는 공연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곡이기도 하다.
‘마이 네임 이즈 요조’는 김민홍이 요조를 관찰하고 만든 요조 주제곡이다. 목소리만 듣고 귀엽고 깜찍한 사람일 거라고 착각(?)하지만 들여다보면 귀여움보단 농염함이 넘치는 여자라는 것. 여러해 함께 음악 작업을 한 동료가 바라본 요조의 모습이다.
주성치 열혈팬 요조“비주류 독보적… 존경”
10곡이 담긴 이번 앨범의 노래들은 하나같이 재미있다. 그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가사들이 특히 그렇다. ‘슈팅스타’가 가장 대표적이다. 동네 중랑천에서 만난 홍콩스타 주성치를 위해 요조가 노래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평소 주성치를 좋아하는 그녀가 산책을 하다 상상했던 내용을 그대로 노래로 담았다.
요조는 인터뷰 하는 날 직접 디자인한 주성치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주성치에게 바치는 노래를 만들고 티셔츠까지 만들어 입고 다니는 이유는 독특한 세계관을 주관있게 밀고 나가는 그의 모습이 멋있어서다. 그는 “비주류 문화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부단히 노력한 그의 일관성을 존경한다”고 했다.
주성치를 좋아하는 남다른 취향의 그녀. 음악 작업 역시 위트 넘친다. ‘낮잠’이란 곡엔 ‘드르렁’ 코고는 소리와 ‘푸푸’ 숨소리 등이 생생하게 들어가 있다. 모두 그녀의 애드리브다. 그는 “기타메고 마주보고 앉아 편하게 녹음을 했는데 제 부분이 끝나 심심할 때 장난을 좀 쳤다”며 “방 안에 이불을 깔고 누워 노래를 부르다보니 코고는 소리가 절로 나더라”며 웃었다.
요조란 이름을 들으면 단번에 요조숙녀(窈窕淑女)가 떠오른다. 그러나 요조는 그 요조가 아니다. 일본 대문호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의 남자 주인공 오바 요조의 이름이다. 그는 “학창시절에 책을 읽고 감명 받아 필명으로 사용하다가 음악 하면서 자연스럽게 예명으로 사용하게 됐다”고 했다.
요조는 소설 속 주인공을 구질구질한 사회 부적응자라고 설명했다. 인간에게 환멸을 느끼지만 타인을 위해 자신과 다른 행동을 한다.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소설 속 요조는 명랑한 사람으로 비춰지지만 결국 인간이 되는 시험에서 실격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누구나 사회 부적응한 면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표출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다”며 “저 뿐만이 아니라 그 책을 읽은 사람 대부분이 그런 점에 공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우울한 작명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요조의 목소리는 너무 산뜻하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현실과 분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땅에 발을 디디지 않고 떠 있는 그런 느낌. 그러나 그는 “순수하고 걱정 없을 것 같은 제 목소리 이면에서 깊은 슬픔을 느꼈다 혹은 위안을 받았다는 평가를 들었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며 “밝은 목소리로 기쁨 뿐만 아니라 슬픔도 전달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은정 기자, 사진= 구성찬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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